ARENA · 2016.11 - 인간의 가치를 위해
ARENA · 2016.11
인간의 가치를 위해
어린 시절의 막연한 꿈이 실제 작업이 되기까지, 그는 쉬지 않고 건축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기능적이며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 건축가로서의 꿈을 멈추지 않는다.
민성진은 사람의 감정을 움직여 마음에 각인시킬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인간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건축가다. 성북동 갤러리를 시작으로 힐튼 남해 골프 & 스파 리조트와 아난티 클럽 서울,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 등을 비롯해 현재 준비하는 실버타운까지 그에게 늘 최우선 순위는 ‘사람’과 사람의 ‘감성’이다. 파격적인 형태를 띤 오브제로서의 건축물에 머물지 않고, 기능적 역할마저 똑똑히 해내며 마침내 긍정적 기운까지 불어넣는 그의 많은 직업이 이를 증명한다.
언제부터 건축가를 꿈꿨나?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집을 지으셨다. 그 과정을 1년 정도 매일 지켜봤다. 어떤 작업인지도 모르면서 막연하게 ‘나도 저런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청소년기를 미국에서 보낸 것으로 안다. 미국에는 언제 어떻게 간 건가?
5형제 중 셋째로 위로 형이 둘 있다. 큰형이 당시 컴퓨터 공부를 하고 싶어 했는데 국내에 관련 전공이 없어서 유학을 결정했다. 부모님께서 내 의사도 물어보셨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부모님이 아닌 형과 함께 간 건가?
그렇긴 한데, 미국에 이미 친척이 살고 있었다. 처음 미국에 건너갔을 때 굉장히 힘들었다. 영어를 못하는 상황에서 9학년으로 들어갔다. 근데 수학을 잘한다며 10학년으로 올라가라는 거다. 한국으로 치면 중2 과정을 마치고, 중3 1학기를 다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거다.
대학은 어떻게 갔나? 수학을 잘해서 그걸로 버텼나 보다.(웃음)
포트폴리오도 내고… 지금 생각하면 나도 신기하다. 처음에는 2년제 대학에 입학해서 편입하라는 권유도 받았는데, 운이 좋아서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USC)’의 입학허가서를 받았다.
USC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
고등학생 때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와 톰 메인(Thom Mayne)이었다. 그들이 USC 건축과를 나왔다. 게다가 5년 과정이어서 대학원에 따로 갈 필요가 없었다. 그때는 대학원에 갈 생각이 없었다.
어린 시절에 막연히 생각한 꿈을 계속 이어갔다는 게 신기하다.
미국은 교육과정이 다르다 보니 도움되는 부분이 있었다. 건축가에 대한 꿈을 꾸면서 그와 관련 수업을 찾아 들을 수 있었으니까. 이를테면 고등학교 때 ‘드래프팅’ 수업을 들으면서 입체도면을 많이 그렸다.
다른 학생과의 수준을 비교한다면 어느 정도였나?
보통? 스스로 꽤 정확하게 그렸다고 생각했는데도 되게 많이 틀리고 어려웠다. 잘하는 애들도 많았고, 정육면체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엔진 블록을 그리는 등 점점 난이도가 높아졌는데, 덕분에 지금도 공간을 3차원으로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대학에도 모형 만드는 방법을 배우지 않고도 깔끔하게 잘 만들어 오는 애들이 꼭 있다. 다만 모형을 잘 만드는 것과 건축을 잘하는 건 상관이 없더라.
그렇긴 하다.(웃음) 건축은 창의성과 성실성이 함께 필요한 분야다.
대학 생활은 어땠나?
캘리포니아는 꽤 자유롭다. 바닷가도 있고, 날씨도 좋아서 사람들의 기분이 항상 좋달까. 교수님의 교육 방식이나 학풍 역시 굉장히 자유롭고 좋았던 기억이 난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친구들과 대화도 많이 했다. 건축과 학생들은 보통 늦게까지 함께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니 친해질 수밖에 없다. USC에 다닐 때 장학금을 받았다. 졸업 후 장학금을 준 회사에서 2년 동안 일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장학금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고, 대우도 좋아서 대학원을 안 갈 뻔했다. 제일 친한 친구가 함께 대학원에 가자고 제안한 덕분에 진학을 결정했다. 운 좋게 둘 다 하버드 건축대학원에 갈 수 있었다. 2년 동안 ‘앨버트 C. 마틴&소시에이트(Albert C. Martin & Asscociates)'에서 실무 경험을 하고 대학원에 들어간 것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다만 대학원 과정을 마칠 땐 다들 불안해했다. 하버드 건축대학원을 나왔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는 건 아니니까. 취직도 잘 안 되고 급여도 낮은 게 이 직종의 현실이다. 막연한 기대치만 높을 뿐.
당시만 해도 국내에 하버드 건축대학원 출신이 많지 않았다.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 했나?
안 했다. 좋게 말하면 단순하고, 나쁘게 말하면 눈치가 없는 성격이다. 세상 물정에 어둡다고 해야 하나. 20년을 함께 산 아내에게도 늘 지적받는 부분이다. 지금 생각하면 대안도 없이 무턱대고 사무실부터 차린 용기에 스스로 박수 쳐주고 싶다. 덕분에 7년 정도 고생했다.(웃음)
SKM 건축 사무소는 몇 명으로 시작했나?
처음에는 직원이 둘 있었다. 현재는 28명 정도가 함께 일한다. 우리 회사 직원은 대체로 오래 함께했다. 평균 10년 정도 됐을 거다. 총각으로 들어와서 다들 처자식이 둘인 아빠가 되고, 그런 과정을 지켜보며 함께 일하니 가족 같다.
대우가 좋은가 보다.
다른 사무실과 비교할 때 쓸데없는 일을 안 한다. 그만큼 일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져 오래 일할 수 있는 것 같다. 직원이 항상 자신감에 차 있는 이유다. 오히려 요즘은 ‘뭘 믿고 저렇게 자신할까?’ 내가 더 걱정한다.(웃음) 직원들이 나보다 더 과감하니까. 클라이언트 역시 우리와 한 번 인연을 맺으면 그 뒤로도 계속 함께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사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도 건축가를 계속 바꾸는 건 손해다.
맞다. 어떤 클라이언트가 모던하고, 고급스럽고, 멋진 건축을 원한다고 할 때, 그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내가 떠올리는 건축의 차이는 꽤 크다고 할 수 있다. 함께 일을 해봐야 비로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거다. 20년 동안 설계하면서 건축물을 총 20개 정도 지었다. 대형 설계사무소가 1년에 40~50개씩 작업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1/20 정도만 작업한다. 그중 완공되는 건 1년에 한두 개 정도. 프로젝트를 몰입해서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건물 하나하나가 생명체로 느껴진다. 비가 오면 ‘남해 힐튼은 잘 있나?’ ‘아난티는 더운데 괜찮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말이 나왔으니 이어보자면, ‘한국 최고의 리조트상’과 ‘한국공간디자인대상’을 수상한 힐튼 남해 골프 & 스파 리조트가 아마 그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에머슨 퍼시픽과 인연을 맺고 아난티 클럽 서울과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을 디자인한 계기가 됐을 테니까.
당시만 해도 골프 클럽 하우스는 클래식한 스타일로 지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와 달리 힐튼 남해 골프 & 스파 리조트는 모던하면서 혁신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클라이언트와 발전적인 대화를 정말 많이 나눴다. 다행히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고, 내 의견에 믿음을 주었다. 건축가는 훌륭한 건축주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덕분에 결과가 좋아서 아난티 클럽 서울과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의 디자인까지 이어졌다. 그 후로는 다른 클럽하우스들도 다양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같다.
건축은 완제품이 아닌, 건축가를 선정한 후에 결과물이 이루어진다. 건축주로서는 건축가가 뭘 할지 모르니 불안할 수밖에 없을 거다.
건축가는 아티스트처럼 자유롭고 사고해야함과 동시에 성실, 믿음 등 진실성을 갖춰야 한다. 모두에게 신뢰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결과물이 나왔을 때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는 직업이기에 불명확한 시도는 좀처럼 쉽지 않다. 처음 사무실을 열고 1~2년 정도는 클라이언트들이 설계 모형을 보고 연락이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시작하기 전 다들 ‘어렵다’ ‘불가능하다’ ‘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건축주다. 건축주와 건축가 사이에 신뢰가 생기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SKM의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성북동 갤러리에 관해 얘기해보자. ‘S'자 형태 건물은 당시 꽤 파격적이었다.
당시 어떤 분이 별장을 짓고 싶다고 찾아오셨는데, 그때 한 분이 동행했다. 클라이언트와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함께 오셨던 분이 내 작업에 더 관심을 두셨다. 그분이 결국 클라이언트가 됐고, 성북동 갤러리가 탄생했다. 당시로서는 실험적인 형태였기 때문에 짓는 과정에서 클라이언트는 물론 일하는 분들까지 불안해했다. 좋은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훌륭한 건축주를 만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좋은 건축물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공간의 존재 이유가 분명하고, 주변 환경에 기여하며 사용자의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더불어 빠져서는 안 될 것이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장소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겉에서 보는 형태와 달리 내부로 들어가 보면 건물이 굉장히 체계적이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기능성을 강조한 덕분에 건축가 민성진이 인기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건축가 민성진만의 장르랄까.
건축가가 반드시 모더니스트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사고가 자유로운 편이다. 어쩌면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전형적인 한국의 옛 생활 환경과 미국으로 건너가 경험한 자유로움이 융합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내 삶도 그 영향 아래 움직이고 있다. 20년을 거의 매일같이 오전 9시부터 밤 10시 넘어서까지 일했다. 예전 우리 아버지들이 그러지 않았나. 밤늦은 시간까지 일하다 파김치가 되어 집에 들어오시는 모습을 많이 봤다. 나 역시 주중에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단, 주말은 철저하게 쉰다. 즐겁게 보내기 위해 여행도 가고, 전시회도 다니고, 자전거도 타고, 영화도 보는 거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많은 편인데 최근에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내 시간이 많아졌다. 한마디로 일할 때는 철저하고 완벽하게 하고, 놀 때는 누구보다 즐겁게 놀자는 것이다.
장점만 골라 갖췄다는 애긴데.(웃음) 매일 10시까지 일해도 즐겁나?
그렇다. 나는 일단 낙관론자다. 살아서 매일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고 감사하다. 젊을 때 가난한 나라로 자주 여행을 갔다. 그러면서 느낀 건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상대적 빈곤 속에 불행해한다. 집을 짓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어떤 집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저 안방, 거실, 화장실이 어떻고 정도로만 정의하는 것이다. 진짜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퇴근하고 집에 와서 무엇을 할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햇살이 잘 드는 큰 창이 있다든가, 아침에 일어나서 음악을 듣고, 요가를 하고 싶다거나… 살면서 자신이 뭘 원하는지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돈이 많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믿는다. 그러면 정말 돈 많은 사람은 다 행복할까? 그럴 리가 없지 않나. 건축가가 모더니스트여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같은 맥락이다. 남들이 보면 이상할 것 같으니 안 하는 심리가 깔려 있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새로운 시도를 막는다.
어떤 건축을 하고 싶은가?
지난 추석 때 가족과 함께 아난티 펜트하우스에 나흘 동안 머물렀다. 평소 말을 거의 안 하던 고3 아들과 오랜만에 많은 대화를 나눴다. 환경이 바뀌니까 얘기를 하는 거다. 환경이 바뀌니 삶의 질이 달라진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건축가의 역할이 크다. 특히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바람이 있다면 지하철역을 멋있게 만들고 싶다. 건축가 1백 명을 모아서 역 하나씩 멋지게 해보라고 제안하면 아마 다들 소명 의식을 가지고 할 거다.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지하철역을 출근길에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데 너무 삭막하다. 내가 마치 돈 벌러 가는 기계처럼 느껴진다. 부자야 훌륭한 건축가 고용해서 좋은 집 만들어 살고, 좋은 차타고 다니면 되지만, 지하철은 정말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하물며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한다. 미술관, 오페라 하우스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지하철역을 개성을 살려 멋지게 만들면 서울이 좀 더 아름답고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꽤 좋은 아이디어다. 단순히 ‘문화’와 ‘복지’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 같다.
건축가가 할 일이 정말 많다.
곳곳에 말 조각 작품이 있다. 직접 만든 건가?
몸통은 직접 디자인해서 깎고, 폐차장에서 자동차 부품을 모아 만들었다. 보통 설계 계약을 하면 건축까지 3~4년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그 사이에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약 12년쯤 됐다. 한 번은 뉴욕에서 전시 요청이 들어왔다. 큐레이터가 작품을 모두 판매할 자신이 있다더라. 좋은 기회인 걸 알았지만 거절했다. 말 한 마리 만드는 데 적지 않은 비용과 노력이 들어간다. 뉴욕 전시를 위해 1백 마리를 만들어 보내야 했는데… 어렵게 다 만들어서 보내고, 팔고 나면 텅텅 빌 거라 생각하니까 못하겠더라.
세계 최초의 폴라로이드도보이고, 세계 최초의 계산기도 보인다. 기계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모든 기계는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계가 있다. 따라서 기계는 정직하다. 다만 기능주의적인 수단으로서 기계를 좋아한다기보다 그 기계가 지닌 감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오래된 계산기나 카메라를 수집할 이유가 없다. 말 조각 역시 기계 부품으로서만 조합해놓은 것이 아닌, 말의 형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감정을 느끼고 관심을 갖는 것이라 생각한다.
취미조차 건축 철학과 닿아 있는 듯 느껴진다.
건축물 또한 건축이면서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사람처럼.